흉물 논란은 슈즈트리를 변호할 때 가장 큰 난관이다. 취향은 사람마다 다르다. 미적 취향과 정치 소신은 설득으론 돌려놓기 어렵다. 개인의 존재감과 연관된 가치관이어서다. 설령 공공미술이라 한들 만인의 취향을 충족시킬 순 없다. 군말 나오지 않게 하려면 광화문 이순신과 세종대왕처럼 위인상 혹은 포항 과매기, 영덕 대게, 금산 인삼, 청양 고추처럼 곧잘 웃음의 소재로 전락하는 지방 특산품 조형물같은 무색무취한 공공미술만 살아남는다. 있는 듯 없는 듯 무난한 조형물은 충격과 불편한 문제를 제기하는 예술의 본질과도 먼 거리에 있다.
우리 머리 위의 창백한 태양은 우리에게 서서히 공포에서 벗어나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전세계 사람들은 연대 행동을 보여주었다. 트라팔가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프랑스 국가를 부르고, 마돈나가 스톡홀름에서 관객들과 함께 '라 비 엥 로즈'를 부르고, 전세계 정치인들이 침통한 표정을 짓는다. 전세계가 우리에게 다시 일어나 걷고, 음악을 듣고,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를 다시 읽으라고 격려하고 있다. 이 시의 화자는 첫 추상적 연들에서 죽음의 유혹을 느끼지만, 이 유혹은 살고자 하는 욕구로 변한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
혹자는 정책검증을 해야 선진정치라는 볼멘 소리를 해대지만, 선진국 정치인의 검증이 정책에 초점이 맞춰진 이유는 도덕적으로 문제될 만한 사람들은 애초에 후보군에서 제외되는 것이 상식화됐기 때문이다. 최근에 있었던 현직 총리와 야당 당수의 TV 토론도 흥미롭다. 질문자는 송곳 질문으로 유명한 방송앵커 제러미 팩스만이었다. "당신은 아직 내 질문에 답변을 안 하고 있다." 한 인터뷰어에게 열두 차례나 같은 질문을 한 전력이 있던 그가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이다. 한국의 지난 총리청문회(인터뷰가 아니다)와의 대비가 단계 단계마다 너무도 극명해서 차라리 허망해진다. 당시 한국 언론은 후보자의 자질을 파헤치는 당사자라기보다는 청문회 통과여부를 점치는 관전자 내지 해설자에 더 가까웠다는 것이 내 기억이다.